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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 #2] 이태리 커피 과연 맛있는가

제이로거듭난피 2023. 6. 26.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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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으로 도발해본다.

원래는 로마에서 지낼 날의 순서대로 올리려고 했는데, 커피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길어서 따로 쓴다.

제목은 어그로성이지만, 내가 로마에서 마신 커피가 모두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아직 가보려고 리스트에 올려놓은 카페들도 남아 있다. 
그렇지만, 과연 정말로 이탈리아 또는 로마의 아무 카페나 들어가도 우리가 한국보다 훨씬 맛있는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를 즐길 수 있는 것일까? 
 
커피 1. 호텔 근처의 작은 카페
시차 적응이 잘 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로마에서 머무는 내내 한국에서 노상 새벽 3-4시에 잠자곤 하던 버릇대로 로마에서는 초저녁에 곯아떨어지고, 한국 시간으로 8-9시 정도 되는 새벽 3-4시에 깼다. 친구들이랑 카톡도 하고 그러면서 1-2시간 정도 더 뒹굴거리다가 다시 잠깐 잠들어서 새벽 6시에 깼다. 
미라클모닝 지구 반대편에서 강제 달성. 
잘 자고 있는 동행인을 깨워 채비를 하고 호텔을 나선 시간이 8시였다. 
구글맵으로 검색해서 호텔 근처에서 그 시간에 문을 연 카페 중 평점이 높은 곳을 찾았다.

 

 

Il Baretto - caffè & panino · Via Gaeta, 43, 00185 Roma RM, 이탈리아

★★★★★ · 샌드위치 가게

www.google.com

카페 간판이 구글맵에 나오는 이름과 달라 다소 혼동이 있었지만, 위치도 맞고 입구 사진도 동일하길래 들어갔다.
고객 중 상당수가 로컬로 보였으며, 작은 카페 안은 꽤 분주했다. 
다만, 구글 리뷰에서 호평 일색이던 샌드위치가 보이지 않아서 잠깐 마음의 갈등이 있었는데, 한창 바빠 보이는 직원에서 샌드위치는 없냐고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냥 쇼케이스에 있는 크로와상 2개와 카푸치노 2개를 주문했다. 
믿을 수 없는 가격이었다. 크로와상 1유로, 카푸치노 1.2유로

하... 로마의 커피는 무려 15년만...
15년 전 이탈리아에서 마셨던 에스프레소 얼마나 맛있었던가.
그때 그맛을 그대로 느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5년 사이에 나의 미각도 재정립되었으니까. 
그렇지만 커피의 나라 이태리라면 내 취향과는 맞지 않더라도 기본은 할 것이라는 기대는 있었다. 구글 리뷰에서도 베스트 카푸치노라는 평이 있지 않던가. 게다가 커피는 무려 48시간만에 마시는 것.
잠시의 기다림 끝에 커피와 따뜻한 크로와상이 나왔다.


한국에서 쌓아온 커피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이 카푸치노는 맛이 없다. 
마셔보았다. 역시, 맛있는 카푸치노라고 할 수 없다. 객관적으로 끔찍하다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맛있다고도 느낄 것이다. 심지어는 1.2유로라는 믿을 수 없는 가격을 고려하면 내 평가는 공정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난 2배가 넘는 3유로를 주더라도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 동행인은 맛이 괜찮다고 했지만, 흥! 무지랑이 같으니라구.
 
크로와상의 경우 아주 고오급으로 잘 만든 크로와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맛있는 빵이었다.
한국 빵값이 창렬해진만큼, 한국 제빵의 수준도 높아져서 요새 고급 재료와 프랑스산 밀가루를 내세운 고오급 프랑스식 빵집에서 아주 섬세하게 모든 겹이 살아 있는 크로와상을 많이들 내놓는데, 그게 비싸보이는 외관과 맛을 지닌 것은 인정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맛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로마의 작고 허름한 카페에서 파는 1유로짜리 크로와상은 맛있는 빵이었다. 겉에 오렌지 맛이 나는 설탕이 뿌려져서 달콤하면서도 결이 촉촉하고 쫄깃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게 내가 로마에서 먹은 빵 중에 가장 맛있었다. 
그럼에도 이태리빵 과연 맛있는가 라는 제목을 내세우지 않은 것은 내가 맛있는 집을 별도로 찾아가보지 않았기 때문인데, 5주 후에 다시 가게 될 로마에서도 빵이 맛이 없다면, 그땐 이태리 빵 과연 맛있는가 라는 제목으로 포스팅을 하도록 하겠다. 
 
커피 2. 판테온 근처의 산트유스타치오
https://goo.gl/maps/1FkgYPiqxf4rE2CP6

 

산트 유스타치오 더 커피 · Piazza di S. Eustachio, 82, 00186 Roma RM, 이탈리아

★★★★☆ · 커피숍/커피 전문점

www.google.com

아침 8시에 호텔에서 출발해서 걸어서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을 거쳐 판테온까지 왔을 때는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여기는 판테온 근처에서 평점이 높고 후기가 많아서 찾아간 곳인데, 12시가 되기 전에 갔는데도 이미 카페 앞 테이블이 만석일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알고 보니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로마 3대 커피로 꼽히는 곳이었다.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주문을 받는 곳이 따로 있고, 주문 및 결제를 한 후에 맞은편 바의 바리스타에게 주문표를 내는 형식이다.
야외에서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데 인기가 많은 곳이라 앉을 테이블이 없었다. (야외 테이블에서 주문을 할 땐 견과류는 시키면 안 된다. 웨이터가 견과류가 담긴 그릇을 들고 가는데 비둘기 한마리가 맹렬하게 달려드는 바람에 컵도 깨지고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너무 덥고 지친 상태여서 에스프레소를 시킬 엄두가 나지 않아, 샤케라또를 시켰다. 
마셔보니 이곳은 에스프레소가 맛있을 거라는 느낌은 왔다. 
안타깝게도 커피 사진은 없고 매장 내부 사진도 1장만 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진 찍기 어려웠다. 5주 후에 다시 가서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를 마셔볼 의향이 생기는 맛이었다.

이쪽에서 주문을 받고, 맞은편 바에서 커피를 제조한다.


 
커피 3. 테르미니역 근처의 카페
https://goo.gl/maps/z9uPoES4LT98wDU29

 

Caffè Trombetta · Via Marsala, 46-48, 00185 Roma RM, 이탈리아

★★★★☆ · 카페

www.google.com

바티칸 투어 전에 아침을 먹기 위해 간 곳이다. 테르미니역 바로 맞은편이라 접근성이 아주 좋은데, 아침 8시면 역 안에도 카페들이 열려 있어서 굳이 이곳을 찾을 필요는 없다.
여긴 입구부터 샌드위치가 여러 종류 전시되어 있고, 안쪽 주문대로 가도 빵 종류가 훨씬 다양하다. 
나는 이날도 크로와상 1, 카푸치노 1을 주문했고 동행인은 살라미 샌드위치와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에쏘는 나쁘지 않고 카푸치노도 전날 마신 것보단 나았지만 역시 맛있는 카푸치노라고 할 수는 없었다.
크로와상은 전날 먹은 게 더 맛있었다. 
여기서 놀란 것은 샌드위치의 맛이었는데, 빵이 놀라울 정도로 푸석했다. 건빵이 빵이 되면 이런 느낌일까...
빵 사이에 살라미를 끼우고 눌러서 구워서 나왔는데, 이탈리아 본토의 파니니는 내가 한국에서 먹던 파니니와는 다른 것일까, 아니면 이집만 그런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샌드위치의 속재료는 맛있었다. 다만 빵이 맛이 없었다. 
 
 커피 4. 바티칸 내부 카페테리아

바티칸 투어 중 회화관을 마치고 나면 바티칸의 카페테리아에서 잠시 쉬면서 가이드을 설명을 듣는 시간이 있다.
커피와 간단한 스낵, 샌드위치류를 팔고 있는 카페였다. 바티칸 내부라고 해서 커피가 특별히 더 비싸지는 않고 에스프레소가 1유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이드의 말로는 메뉴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지만, 한국 가이드들의 요청으로 아아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맛이 괜찮다는 말에 샌드위치와 아아를 시켜보았다. 
샌드위치는 이번에도 푸석하다. 이것이 이태리의 빵인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4유로였는데, 에스프레소에 얼음과 물을 탄게 아니라 스벅 오늘의 커피 마냥 미리 내려놓은 커피에 얼음을 타서 주는 방식이었다. 그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커피 5. 파로 루미네리스 오브 커피(Faro - Luminaries of Coffee)
https://goo.gl/maps/ddgqJvwpLcfw3p9m7

 

Faro - Luminaries of Coffee · Via Piave, 55, 00187 Roma RM, 이탈리아

★★★★★ · 커피숍/커피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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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스페셜티 커피로 시도해본다. 이것이 짧은 로마 일정의 마지막 커피였다. 이날도 새벽에 기상해서 역시 잘 자고 있는 동행인을 깨워 8시 반쯤에 호텔을 나섰다.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스페셜티 커피하우스라는 곳.
마침 숙소와 가까워 다행이다 싶었다. 펑일은 8시 오픈이지만, 주말은 9시에 문을 연다.
설렁 설렁 걸어서 도착하니 아직 문을 열기에는 10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주변을 좀 더 돌아다니다가 9시 5분쯤 갔다.
마수걸이 손님이 될줄로 예상했는데 왠걸, 이미 카페 내부와 바깥 테이블은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우리가 착석하자 곧 만석이 되어 대기가 생겼다.

여행객과 현지인 모두에게 사랑 받는 카페

to go는 계산대에서 주문하면 되지만, 테이블에서 마시고 갈 경우는 직원이 와서 주문을 받아준다.
브런치 메뉴판은 직접 가져다주고, 음료 메뉴판은 QR 코드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음료 메뉴가 테이블 착석 시 0.5유로 추가된다. 
매장은 전체적으로 환한 느낌이고, 직원들은 호주 스타일 커피를 하는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쾌활하고 나이스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 
필터 커피를 주문하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물어봐준다. 라이트 로스팅에 플로럴하고 프루티한 걸 먹고 싶다고 하니 케냐로 추천해줌. 5.5유로인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동행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브런치 메뉴도 먹어보기로 결정하고, 과일이 올라간 브리오쉬 식빵 토스트를 주문했다. 내가 주문한 것은 10유로 정도였고, 전체적으로 브런치 메뉴는 10~15 유로 사이였다.

커피 뷔페인가.

커피는, 로마에서 마신 것 중 가장 맛있었다. 레몬 같은 산미에 약간의 열대과일 느낌. 식을 수록 맛있다. 카푸치노도 맛있다.

하지만 스페셜티 커피라면 이미 한국이 훨씬 앞서있다. 이미 오랜 카페 문화가 견고하게 자리 잡은 로마에서 스페셜티 커피의 입지는 한국보다 좁을 것이다. 

블랙 커피도, 우유 커피도 한국에 더 맛있는 곳이 많다. 

로미의 카페에서 보기 힘든 팬시한 프리젠테이션

이 토스트로 말하자면... 예뻐서 인스타에 올리기 딱 좋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ㅋ 파로카페에서 브런치 메뉴는 추천하지 않고 싶다.

그냥 크로와상이나 쇼케이스에 진열된 빵 중에 하나를 먹고 커피를 즐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 같다. 왜 때문에 브리오쉬 식빵도 뻑뻑하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10유로면 한화로 14000원이다.  

쇼케이스 안의 달다구리들. 맨 오른쪽이 마리토쪼.

계산하면서 사진의 오른쪽 구석에 있는 마리토쪼도 하나 포장했다. 3유로였는데, 모닝빵에 생크림 가득 채운 맛. 크림은 맛있지만, 그냥 노티드 도넛에 가자.  

 

전체적으로 맛있게 잘 마셔놓고, 혹평만 늘어놓는 느낌이긴 한데 파로는 좋은 카페다. 

커피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고, 직원도 친절하다(사실 로마 카페에서 이런 환하고 프렌들리한 태도를 만나기 어렵다). 

브런치 메뉴만 안 시키면 훨씬 만족스럽게 커피를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로마에서 3일 동안 커피를 아주 많이 마신 것은 아니지만, 유명한 카페도 가보고, 이름 없는 곳도 가보았다. 

1~1.5유로라는 착한 가격과 에스프레소에 한해 평균적으로 괜찮은 맛을 낸다는 건 인정.

요즘은 한국에서도 에쏘바가 여기 저기 들어서고 있고, 아주 유명하지 않더라도 맛있는 아메리카노를 내는 카페들이 많다(안타깝게도 서울이나 특정 도시 중심인 것 같기는 하지만). 아메리카노가 맛있는 곳은 에쏘도 맛있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로마에서 마신 커피를 인생커피로 칭하는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꽤 보았다.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음식 경험이라는 건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여행지가 주는 들뜸과 관대함이 끼어 있는 경험일 수도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다. 

찬사로 가득한 로마의 카페 경험 가운데서 조금은 다른 의견도 내보고 싶어서, 이렇게 길게 써보았다. 

5주 후에 나는 친구와 로마를 다시 찾을 것이다. 그때의 경험도 정리해서 올려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