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에 입성 첫날 이후로 실질적인 생활상에 대한 업데이트가 거의 없었다. 이미 한국으로 돌아온 현 시점으로부터 한달 이상이 지났다. 왜 이렇게 포스팅이 써지지 않았던 것일까...
첫 주의 가혹한 트라우마 때문일까...
그렇다면 마음 속의 그 검은 상자를 열어보겠다.
하루 일과는 대충 이렇다.
아직도 자동으로 미라클 모닝이 진행되던 중이었기 때문에 대충 새벽 5~6시에 일어난다.
벌떡 일어나지는 않고 1시간 이상 누워서 잉여의 시간을 보낸다.
가방 크기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요가매트와 폼롤러를 챙겨왔기 때문에 10분 정도는 스트레칭을 해준다. 마침 침실에 큰 대형 거울이 있어서 보면서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 햇살을 맞으며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과 마음의 밸런스를 찾는 나라는 뽕에 잠시 취한다.
7시 반이 되면 이젠 화장도 해야 하고 아침 식사도 해야 한다. 어차피 재료나 도구가 한정적이므로 아침 식사는 간단한 편이다.
8시 40분에는 집에서 출발하면 걸어서 10분 이내로 어학원 도착.
9시~10시 반 수업 / 30분 휴식 / 11시~12시 반 수업
이 30분 휴식 시간이 가장 어렵다.
기왕 어학원을 다닌다면 동행인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지의 친구들과 교류를 나누며 오순도순 지내면 좋겠는데...
모두가 한날 한시에 시작하는 학교와는 달리 수업은 계속 진행 중인데 중간에 학생들이 추가되는 어학원의 구조상, 이미 서로 친해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슬쩍 끼어들어갈 주변머리가 없다.
우리 반의 프랑스 친구가 한국에 관심도 많고 자기 김볶밥(김치볶음밥이라고 분명히 말함 ㅋ) 너무 좋아하고 다음 달에 한국 여행 가는데 제주도 부산 광주 다 간다고 나한테 말을 걸었는데 머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한국 간다니까 뭐 맛집이나 좋은 데라도 알려조야 하나, 근데 나도 밖을 안 싸돌아댕기니까 아는 데도 없는데, 내가 좋아하는 델 얘가 좋아할까 등등 생각만 복잡하다가 "오 알럽김취버끔밥투" "제주이즈륄리뷰티풀" 두 마디 대답한 거 실화냐고...T_T
걔가 나한테 한 3분은 이야기한 거 같은데... 돌이켜서 생각해봐도 자기혐오 돋네...(이 후렌치와 관련해서는 더 쭈굴거리고 아주 하찮은 일화도 있는데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워서 쓰지는 않을 것이다)
난 40살 먹은 상어른이니까 혼자서 보내는 쉬는 시간 따위 암씨롱토 않았으면 좋겠는데 ㅋ
보통은 쉬는 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우르르 교실을 나간다. 에어컨 나오는 시원한 교실에 앉아 도란 도란 담소를 나누는 학생은 없다.
마냥 빈 교실에 혼자 앉아 있기도 뻘쭘하고 동행인도 늘 혼자서 찌그러져서 담배나 피우고 있기 때문에 일단 밖으로 나가 두 쭈굴이가 만난다.
사실 첫 주는 되려 동행인에게 좀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에겐 어학원의 유일한 한국인 청년 흡연 동료가 있었기 때문. 여튼 어학원 앞 계단길에서 신세한탄도 하고 누가 더 한심한지 서로를 비난하며 극딜하기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30분을 보낸다.
그리고 또 1시간 반 수업을 하고 12시 반이 되면 비로소 일반 영어 코스가 끝난다. 집중 영어를 듣는 경우라면 30분의 휴식 시간 후에 1시간 반 컨버세이션 수업이 있다.
3일 정도 수업을 듣고 나자 약간의 불만이 생겼다.
일단 수업은 교재의 문법을 기초로 해서 진행되는데, 스피킹 액티비티가 많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도 수업 시간 중에 말을 많이 하는 학생들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나처럼 멍석 깔고 3번 권하지 않으면 입 안 띠는 사람들은 어쩌죠?
아무리 각자도생의 사회라지만 나도 돈 냈는데!!
스스로의 문제가 크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쨌든 문법은 대충 다 아는 내용이고, 나는 스피킹에 익숙해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느껴져서 계속 마음 속으로 고뇌했다. 이미 우리반의 다른 친구들 스피킹이 훨씬 플루언트하긴 해서, 내가 어드밴스드로 올라가게 해달라고 하는 게 맞나 싶지만 난 좀 더 말을 하게 멍석이 깔리는 환경이 필요한데 어드밴스드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또 우리반 선생님이 일주일 정도의 기간에 걸쳐 나름의 레슨 플랜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주의 후반이 되면 좀 더 스피킹이 늘어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어서 일단은 일주일을 다 들어보기로 했다.
동행인도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동행인의 경우는 강사에 대한 만족도는 나보다 훨씬 높았다.
다소 연배가 있는 아일랜드 아저씨였는데, 그도 어학원의 아웃사이더였는지 학원 앞 계단길 앞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종종 목격...
그 강사는 수업 중에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 상당히 학술적이면서도 상세한 설명을 해주는데, 그것이 동행인의 취향에 부합하기도 하고 실제로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다만 그러다 보니 수업에서 말할 기회 자체가 적었던 거다.
또, 강사에 대한 만족도와는 별개로 그에겐 클라스 메이트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영어가 유창한 나 자신"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고 이 한달짜리 어학 코스에 대한 기대가 컸던 동행인은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싶다는 의욕과 함께 스피킹 연습을 위해 좀 더 많은 수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여튼 우리 둘 다 일주일은 들어보자는 합의를 내렸다.
12시 반에 수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시간이 새털같이 많으니까 또 점심을 해먹고 동행인은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블로그 집필에 몰두했다. 내가 블로그를 쓰는 동안에는 동행인이 식사 준비를 대부분 맡아서 해주었는데 그 점은 고맙게 여기고 있다.
이러한 인풋과 지원 대비 생산성이 상당히 낮았던 것이 다소 안타깝다.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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