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주에는 해가 지면 저녁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도 많이 한 편이었다.
돌이켜 보면 몰타에서 지내는 4주 동안 6월 중순~말경 첫 2주 동안 날씨가 가장 좋았다.
낮에는 태양이 뜨겁고 덥지만, 그늘만 들어가도 시원하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서 에어컨을 켤 필요도 없었다.
발레타에 살고 있으니 가장 먼저 가볼 곳은 어퍼바라카 정원.
체감상 발레타는 저녁에 많이 붐비는 느낌인데, 그건 내가 아마 낮에 안 싸돌아댕기기 때문일것. 어쨌든 저녁이 훨씬 매력적이다. 저녁이 되면 가게마다 테이블을 야외에 내놓고 장사를 하고, 식당마다 밴드나 가수를 고용해서 라이브 공연을 한다. 버스커들도 많다. 거리를 걸으면 어디서든 익숙한 팝이 흘러나온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도 있고 못 하는 사람도 있지만 휴가지가 주는 특유의 여유와 너그러움으로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이날은 맥도날드에서 포장해가서 저녁을 어퍼바라카 정원에서 먹기로 했다. 며칠 동안 고기와 탄수화물만 먹었던 터라 샐러드 넘나 그리워서 나는 샐러드, 동행인은 빅맥.
어퍼바라카 정원 사진 다 어디갔지...;;; 찍었는데...;;
정원 자체는 크지 않지만 예쁘게 조경이 되어 있고 전망대가 있어서 바다와 항구뷰가 멋지다.
대포를 쏘는 행사도 있다는데, 큰 관심이 없어서 일부러 보러 간 적은 없다.
발레타에 살다보면 대포와 불꽃놀이 소리에는 이력이 난다.
https://goo.gl/maps/qbvmYRzkzYHeZyax7
수요일에는 이지스쿨의 웰컴파티가 5층에서 열린다. 수요일 수업이 마치자마자 다들 우르르 올라가길래 뭔가 했더니 그거시 웰컴파티.
신규 학생들만 대상으로 하는 건줄 알았는데 기존 학생들이 더 열심히 간다. 왜냐, 먹을 걸 준다.
피자, 파스티찌 등 꽤 넉넉하게 제공이 되니까 점심 한끼 해결하러 가는 것.
이것도 음식 사진은 없네...
내가 보기엔, 뉴비들은 조용히 짜져있고 기존 학생들은 열심히 먹고 떠든다.
나도 매주 수요일이면 참석해서 조용히 점심 해결함 ㅋ
목요일에는 하원 후에 비치에 가보자며 근처에 샌드비치를 몇 군데 검색해보고 발루타 베이 비치(Balluta Bay Beach)로 갔다.
https://goo.gl/maps/7Wkr5pXGcGhUkaEY8
세인트 줄리언스에 있고, 발레타에서 버스로 대략 30분 정도 걸린다.
수영복을 안에 챙겨입고 배낭에 돗자리, 비치타월, 습식타월, 카메라, 스노클링 마스크 등을 가득 채워서 출발했다.
드디어 지중해 해변 첫 경험!
그런대 도착한 해변은 쵸큼은 실망스럽달까...
해운대나 경포대 같은 해변 사진(사람이 없을 때)을 보고 자란 한국인이라면 실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래사장이 좀 볼품없다. 대신에 바다색이 너무 예쁘고 맑다.
바다가 깊지 않아서 수영 초보자도 물놀이 하기에 좋다.
그리고 비치에서 보이는 교회인지 건물인지가 공사 중이어서 다소 뷰에 차질이 있다고 느꼈는데, 이렇게 피씨에서 사진을 보니 그래도 주변 건물이랑 색을 맞춰서 그런지 보기에 아주 거슬리지 않는다. 유럽 관광지들은 공사 중에도 최대한 주변 경관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가림막을 치고 있는데 그런 건 좋은 생각같다.
게다가 몰타에서 해수욕은 처음이라, 도저히 짐만 두고 둘 다 바다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동행인은 평시에 본인을 김물개라고 불러달라며 수영 실력에 아주 자신만만해 했는데 바다 수영을 썩 내켜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수영 후에 샤워시설이 없으면 별로 안 하고 싶다며... -,.-
시상 곱게 자란 대갓집 도련님이 따로 없다 증말.
수영을 못 하는 입장에서 동행인이 함께 입수하지 않으면 바다에서 마냥 놀기가 불안했는데, 둘 중 하나는 짐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혼자 들어간 통에 별로 즐기지도 못했다.
이렇게 아쉽게 첫 지중해 해변 경험 마감.
잘 놀고 잘 지내놓고 제목은 왜 그렇게 난리법석 오도방정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T_T 돌이켜 생각만 해도 청심환 마렵네...
수요일경 선생님이 펀 프라이데이가 준비되어 있다며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팝송 가사를 하나씩 보내달라고 했다.
수업 시간에 가사를 한번씩 읽어보고 단어나 표현에 대해 공부하고 오후에는 5층에서 가라오케를 열거라며!!
그러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이니 부담을 갖지 말라고 했지만...
부담이 안 될 수가 없다. 난 부르지 않을 것이다.
꽤 고민한 결과 선정된 곡은 Foo fighters의 The pretender.
3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졌다.
1. 내가 좋아하고 자주 들을 것
2. 분위기에 휩쓸리더라도 절대로 부를 엄두도 못 낼 것.
3.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일종의 바람이랄까...내가 맨날 쭈삣거리고 소심한 캐릭터니까 좀 세보일 것.
https://youtu.be/SBjQ9tuuTJQ
금요일 아침까진 꽤 기분이 좋았다.
내 옆자리 독일 아줌마한테 몰래 물어봤는데 자기도 안 부른다고 한다. 동지 발견.
두 번째 수업이 시작되고 5층에 올라갔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다른 반 학생들이 신나서 기다리고 있다???
5층에서 가라오케 수업한다고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구경하러 나온 것.
그리고 학원 직원이 올라와서 사진도 찍는다. (이미 첫날에 쓴 동의서에 학원 홍보 목적으로 사진이나 영상 촬영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항목이 있다) 최대한 카메라에 잡히지 않게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씩 불안해지고 손발이 축축해지려는데 사람들은 이미 너무 신이 났음....
노래 부를 사람? 이러니까 알아서 잘들 나간다.
다른 반 학생도 나와서 부르고 떼창하고 난리났다.
이젠 불러야 나가는 사람들 차례.
자긴 노래 안 부를 거라던 독일 아줌마가 이름 2번 부르니까 벌떡 일어나더니 starry starry night을 부른다???
손발에 순환이 잘 안되는 느낌...
이젠 다들 신나서 내 존재를 잊어버리기만 바라는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친절해서 나를 잊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고 하는데, 2번 거절해봤지만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고 내 이름을 부를 상황에서 더 이상 거절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ㅠㅠ
결국 맨정신에 청심환도 없이 단상 위로 올라가 얼굴만 아는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하드락을 부르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내가 그렇게 나쁜짓을 하면서 살지는 않은 것 같은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미친 듯이 떨어서 그런지 자꾸 박자를 맞추지도 못하고 따라잡지도 못하고 웅얼거리기만 하고 미치겠는 와중에 후렴은 왜 이렇게 길지....
끝나고 나니까 어지럽고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쪽팔려서 죽을 것 같다 정말.
그런데 말입니다, 알고 보니 내 순서에만 노래가 2배속으로 재생이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선생님이 굉장히 미안해 하면서 나에게 다시 부를지 물어보았다.
아니 난 지금 당장 집에 가서 누워서 쉬어야 대.T_T
이날 수업은 어학원 인스타에도 올라가 있다. 물론 내 영상이나 독사진은 아니고 ㅋ
다들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와중에 열심히 찾아보면 구석에 내가 나오긴 함.
https://www.instagram.com/easyslmalta/
이날은 집에 어떻게 돌아갔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2시간을 누워 있어도 정신적 충격에서 쉽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
쓰고 있으면서도 우울하고 쪽팔리고 그르타... 이 정도면 트라우마라고 징징거려도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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