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1시간 반이었던 여정을 약 20분 정도 단축하는 기염을 토하며 라이언에어 비행기가 몰타에 내렸다.
사람들이 신나서 그랬는지 착륙할 때 박수를 쳤다. 어디서 찾아보니 라이언에어를 타고도 무사히 살아서 도착했음을 자축하기 위해 사람들이 으레 하는 행동이라고도...(케바케지만 내가 탔던 비행기는 크게 위험하지 않았다)
몰타의 유일한 공항이고 국제 공항이라 당연할지는 몰라도 루카 공항은 작지만, 고터 느낌이었던 참피노 공항보다는 좋았다.
짐도 빨리 나온 편이었다. 블로거도 아무나 되는 건 아닌지, 사진 한장이 없다. ㅎ
다들 공항 사진도 자세히 올리고 그러던데...
유학원 대표가 픽업을 나오기로 되어 있어서 서둘러 나갔다.
어색 어색한 인사가 오갔고, 그는 버스 카드부터 사라고 알려주었다.
몰타의 버스는 1번 탑승 시 2유로인데, 12회 single journey 카드를 15유로에 살 수 있다. 아무데서나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내리자마자 공항에서 사는 게 좋다. 유의할 점은 야간 버스 이용 시 2회 차감이다(그러면 야간 버스가 몇 시부터 해당되는 건지 안내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Night service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대략 밤 11시 정도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나와 동행인은 12번을 모두 사용하지 않았는데 횟수가 소진되었다.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밤에 싸돌아댕기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짐을 차에 넣어주면서 대표가 한 말에 사실 조금 빡쳤다.
"발레타는 아무래도 살기 좀 불편하실텐데...."
아니, 그럼 그걸 내가 방을 구하면서 여기 어떠냐고 물어볼 때 알려줬어야지!
유학원 입장에서 우리 일행은 어차피 학교 제공 숙소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가 어디 살든 이러쿵 저러쿵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린 버스 통학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발레타가 불편하다고 했으면 이지스쿨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어학원을 고르거나 아예 다른 유학원을 이용했을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세일즈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게 아니기도 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흘러나온 말일 수도 있고 유학원에서는 우리의 편의를 위해 신경을 써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담할 때는 장점만 어필하고 도착한 첫날에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리는 없다.
결과적으로는 발레타에서 지내는 게 좋다.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이곳에서 지내는 게 좋다. 차후에 자세히 작성하겠지만 지금 발레타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든다는 것만 밝힌다.
그렇지만 상업적 목적이 없는 사람들의 후기나 정보를 최대한 많이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그래서 여기 가급적 솔직하게 적고 있다.
귀찮더라도 직접 경험해본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댓글을 남겨 경험담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
공항에서 발레타로 들어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말로 생각 외였다.
크레인이 정말 많이 보인다.
대표가 설명하기를 여기도 지금 개발 붐이 불고 있고, 특히 코로나 기간 동안 중단되었던 공사들이 재개되고 있어서 여기 저기서 공사 중이라고 한다. 참내, 이것도 사진이 없네 ㅠㅠ
여하튼 아름다운 천년고도(사실은 500년 미만...)와 천혜의 바다를 기대하고 왔다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우리가 로마에서 지낼 때 농담으로 오래된 건물을 보고 "건물이 썩은 게 아주 운치가 있구만" "지대로 썩었다잉" 등 썩었다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로마야 미안...
해풍을 맞고 썩은 건물은 위용이 남다르다. 그나마 발레타에 들어오면 나름 관리도 되어 있고 고풍스럽다고 할만하지만, 외곽 지역의 건물은 그냥 낡아(썩어)있다.
차가 어느덧 좁다란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양옆으로 들어선 건물들은 4-5층 정도 높이였지만, 골목길이 좁으니 더 높아보인다.
여느 올드타운과 마찬가지로 발레타도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거주민이 아니면 짤없이 주차위반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헸다.
숙소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열쇠는 3개다. 하나는 건물의 정문, 두 번째는 건물의 소현관? 세 번째는 숙소의 문이다. 하... 마지막으로 열쇠 써본 거 언제인지 기억나는 한국인, 손???
오래된 집답게 열쇠도 잘 안 돌아간다. 지금은 요령이 생겨서 잘 하지만, 처음에는 한참을 낑낑거려야 했다.
예전에 파리 한인민박집에서 잘 안 돌아가는 열쇠를 힘으로 돌리려다 문을 고장낸 경험이 있어서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겨우 문을 열고서 들어가보니... 따란!
아주 긴 복도가 보인다. 긴 복도 끝으로 크고 높은 창이 있고,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거실이 충분히 환했다.
복도 맨 앞쪽 방이 침실이고 그 다음으로 화장실, 세탁실, 화장실, 주방 순으로 방이 있었다. 맨 끝에 거실과 침실이 있는데, 주방도 2개의 침실도 모두 공간이 널찍했다. 거실만 비교적(상당히) 좁은편인데, 몰타의 오래된 집들으 모두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가 바랐던 것처럼 집이 환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구조상 채광이 좋을 수가 없는 집인데 비교적 고층인데다가 층고가 높아서 직사광이 없이도 빛이 집안에 들어차는 것 같다.
집안을 둘러보다 보니 드는 생각이... 하숙을 치고 싶다는 것!! 공간이 아깝다!!
2명이서 지내기엔 너무 큰 공간이다. 공간이 아깝기도 하고 ㅋ 본전 생각도 나서 하숙을 치던가 아니면 누구든 아는 사람이 와서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광고해보았지만... T_T
이 숙소에 구비된 품목은 아래와 같다.
대형 바쓰타월 2장, 일반 타월 4장, 바쓰매트 2장, 각 침실마다 옷장과 서랍장, 옷걸이 대략 20개, 화장지, 세탁 세제, 주방 세제, 세탁기, 건조기, 에어컨, 식세기(사용해보진 않았다), 칼, 후라이펜, 접시, 냄비, 다리미, 드라이어, 와이파이, 티비, 넷플 계정, 이전 투숙객들이 사용하고 남기고 간 듯한 양념들(소금, 후추, 발사믹 등)
지내보니 주방 용품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식기도 접시는 많지만, 오목한 접시는 2개 뿐이고 볼이 없다. 후라이팬도 작은 건 괜찮았지만 큰 건 너무 벗겨져서 쓸 수가 없었다. 도마는 아예 없었다. 칼은 잘 안든다.
호스트에게 이것 저것 해달라교 요구하기가 힘들어서, 거의 일주일 정도 그냥 불편한 채로 살다가 도마와 후라이팬은 꼭 필요하다고 느껴서 요청했는데 금방 새로 사다주었다. 진작 요청할걸...
기본적인 품목이거나, 에어이앤비 페이지에서 구비되어 있다고 공지한 품목의 경우는 가급적 빨리 요청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정 안사준다고 하면 그때 새로 사거나 해도 그만이다. (아는데도 요청하기 어려운 건 사실...)
짐은 대충 풀어놓고 식사도 할 겸 주변을 둘러보러 나갔다.
기분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소박한 듯 하면서도 예쁜 거리와 쨍하게 푸른 바다, 오래된 건물이 주는 편안함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근처에 식사할 곳도 꽤 많았고, 야외 테이블마다 관광객들이 앉아 있었다.
근처를 두 바퀴 정도 돌다가 랜덤으로 식당을 골랐다.
https://goo.gl/maps/4ov2semLZAAeNLzDA
리뷰를 보면 식당의 데코를 극찬하고 있지만, 한국에 이미 힙하고 세련된 카페나 식당이 너무 많다. 신경써서 꾸민듯 보였지만, 벽에 붙여놓은 자전거나 책같은 것들이 옛날 대학로 감성이랄까....
빨간 머리 웨이터가 와서 암 피터 암 썰빙유 투데이 라고 멋들어지게 인사를 했다. 제스쳐도 굉장히 정중하다.
비스트로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아 조금 웃기기도 했다.
그즈음 알아차린 건데... 크지 않은 식당이지만, 손님의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한국의 경우 할배들이 소주까고 있는 노포라면 틀림없이 맛집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여기도 그런걸까. 며칠을 지내보니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이유를 궁금해 하면 좋겠다)
메뉴판을 탐구하고 있는데 피터가 다시 와서 이야기했다. 깜박했는데 오늘 **는 안 되고, 스페샬 메뉴로 문어 샐러드가 있단다.
햄버거와 문어 샐러드, 한치 튀김에 맥주 2병을 시켰다.
햄버거는 먹어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감튀가 아주 맛있었다. 짜지도 않고...
문어샐러드는 스페인식 차가운 샐러드가 아니라 따뜻하게 조리된 샐러드가 나와 좀 의외였는데 맛은 괜찮았고, 가장 맛있게 먹은 건 한치 튀김이었다. 무엇 하나 짜지 않다는 미덕....
음식은 전반적으로 준수했는데, 서버들이 좀 넋이 나가 있는지 뭔지...
다른 테이블의 디시를 우리 테이블로 배달하더니, 계산하겠다고 했더니 한참 있다가 계산서를 가져다 주고 그것도 옆 테이블(두 할머니)이랑 바꿔서 줬다;;
이 모든 과정과 실수가 정중한 제스쳐 속에서 이루어진 거라 무성 코미디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음식 가격은 총 50유로(7만원) 정도. 외식 물가는 정말 한국과 크게 안 다른 것 같다.
그래도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쯤엔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날 어학원 첫 등원에 대한 걱정으로 날카롭게 곤두섰던 신경도 한풀 가라앉았다.
로마에서의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10시에 잠들었다. 몰타에서의 첫날 점수는 60점을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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